2026년을 바라보는 지금, 다시 ‘타다’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단순히 하나의 서비스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혁신을 대하는 방식 전체를 상징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2018년 타다의 출발부터 2023년 대법원의 무죄 확정까지 약 5년의 시간은, 한 스타트업의 흥망사가 아니라 기술·제도·사회 인식이 충돌한 압축된 역사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재웅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중앙일보 중앙경제란은 최근 이재웅의 재등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등장’ 자체보다, 그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했느냐이다. 타다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은 빠르게 전진했다. 자율주행 기술은 연구실을 넘어 도로 위 실증 단계로 진입했고, 이동 서비스는 더 이상 ‘운전자가 있는 차량’에만 머물지 않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기업가가 바로 이재웅이다.
타다를 이해하려면 우버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우버는 개인이 보유한 차량과 유휴 노동을 연결하는 순수 플랫폼 모델이다. 차량도, 운전자도 소유하지 않은 채 연결과 매칭을 통해 급속히 확장했다. 반면 타다는 차량을 직접 확보하고 드라이버를 선발·교육하며 서비스 품질을 통제했다. 우버가 ‘연결’을 팔았다면, 타다는 ‘경험’을 팔았다. 이 차이는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이자, 규제 충돌의 성격 차이로 이어졌다.
우버가 주로 노동법 문제에 직면했다면, 타다는 운송사업 면허라는 제도의 핵심과 충돌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후자에 훨씬 더 강하게 반응했다. 이는 기술의 우열 문제가 아니라, 기존 이해관계 구조의 문제였다. 타다의 실험은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 산업과 만날 때 어떤 저항이 발생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 장면은 산업혁명 초기의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두려움 속에서 공장을 파괴했던 노동자들. 19세기 영국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2020년대 한국에서는 그 역할을 택시 운전사들이 수행했다. 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이 언제나 기존 질서에 위협으로 인식된다는 역사적 반복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러다이트 운동 이후 산업혁명은 멈추지 않았고, 사회는 결국 제도와 직업 구조를 재편했다. 타다 이후의 한국 모빌리티 산업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는 기존 이해관계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배제와 충돌의 길을 갈 것인가, 전환과 공존의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2026년 버전의 ‘타다’는 단순한 차량 호출 서비스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자율주행차량서비스라는 키워드는 이 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 운전자가 사라지는 순간, 기존의 ‘운송 노동’ 중심 논쟁은 근본적으로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재웅이 진짜로 고민하고 있을 질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간 운전자가 아닌 알고리즘이 운전하는 시대에, 이동 서비스는 어떤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가.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선택 앞에 서 있다. 혁신을 다시 법정에서 판결로만 확인할 것인가, 아니면 제한된 실험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험해볼 것인가. 타다의 경험은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기술은 멈추지 않으며, 억압된 혁신의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치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진다. 5년의 시간을 통과한 이재웅은 자율주행이라는 다음 국면에서 어떤 방식의 도전을 선택할까. 그리고 우리는 그 도전을 또다시 ‘금지’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실험’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태도 자체가, 우리나라 경제의 다음 10년을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