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출기업, 특히 포장·소재·제조 중심의 중소·중견기업에게 있어 “관세장벽”과 “기술장벽(표준)”은 실제로 수출의 성패를 가르는 양대 비관세 리스크이다. 이 두 장벽의 구체적 구조와 최근 흐름, 그리고 한국 기업이 직면한 대응 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관세장벽은 국가 간 무역에서 상품 수입 시 부과되는 세금으로, 가격경쟁력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킨다. 한국은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이 많아 관세율이 낮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숨은 장벽’이 존재한다.
① 관세 혜택의 역설
예컨대 한-EU FTA, 한-미 FTA 등을 통해 명목상 ‘무관세’가 적용되지만, 원산지 증명서 미비나 소재 국산비율 미충족으로 인해 관세가 재부과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포장재, 플라스틱 부품, 펌프캡 등은 복합소재(Composite Material) 로 분류되어 원산지 판정이 까다롭다.예를 들면 폴리프로필렌(PP)은 한국산이지만, 실리콘 밸브가 중국산이면 전체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② 신흥국의 보호무역 강화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은 국산품 보호를 명분으로 특정 품목(포장재, 식품용기, 위생용품 등)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
③ 환경관세(Eco Tariff)의 등장
EU가 2026년부터 단계적 시행 예정인 CBAM(탄소국경조정제) 은 사실상 ‘탄소 관세’로, 제조 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수입가격에 반영한다. 플라스틱, 알루미늄, 포장재 관련 품목도 향후 적용 가능성이 높다. 즉, 친환경 인증·LCA(전과정평가) 없이는 수출 자체가 어렵게 된다.
기술장벽은 표준, 인증, 시험, 표시 규정 등 비관세적 규제를 통해 외국 제품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드는 무역수단이다.
① 국제표준과의 불일치
ISO, ASTM, EN 등의 국제표준을 따르지 않은 기술이나 규격은 현지에서 ‘비인증 제품’으로 분류되어 입찰·납품이 불가능하다. 특히 포장산업에서는 재활용성·위해물질 기준·식품접촉 안전성 등 다국적 인증이 요구된다.
② ESG·친환경 표준의 강화
EU의 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ESPR) 과 Green Claims Directive 는 “그린워싱 방지”를 법제화함 - 즉, 단순히 ‘친환경’ 표기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수명·재활용성·소재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만 수출이 허용된다. 한국 중소기업의 경우, 이러한 환경정보 데이터 관리 역량 부족이 최대 약점이다.
③ 시험·인증 비용의 부담
각국은 동일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시험기관 인증’을 요구한다. 예: 한국 시험성적서를 인정하지 않고, 유럽 내 공인기관에서 재시험을 요구. - 이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수출 1건당 수백만 원~수천만 원의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한국 기업이 취해야 할 대응 전략
(1) 국제표준 선제 도입
KS, ISO, ASTM 간 상호인증 체계를 구축해 수출 초기단계에서 표준일치성 확보 - 포장산업의 경우 “ISO 18602(포장재의 환경성 평가)” 및 “ISO 18606(퇴비화 가능 포장재)” 등이 실질적인 필수 기준으로 부상 중.
(2) LCA 기반 제품 데이터화
제품별 탄소배출량·소재비율·재활용가능성을 수치로 관리하여 CBAM 및 EU ESPR 대응에 필수적인 투명성 확보.- 이를 위해 제품환경정보표시(EPD) 시스템 도입 필요.
(3) 공동인증 및 시험데이터 상호인정 추진
산업통상자원부·KOTRA를 중심으로, 주요 교역국과 시험성적서 상호인정 협정(MRA) 확대 필요. - 예: 한국 내 인증을 유럽, 아세안 등에서 그대로 인정받는 체계.
(4) 산업 간 협력형 대응
개별기업 대응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산업별 클러스터 단위의 공동표준 대응체계 구축이 필요.- 예: 포장재 제조업·원료업·브랜드업체가 함께 탄소감축형 기술컨소시엄을 구성.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더 이상 가격이나 품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포장 및 제조기업은 국제표준 선도국가로서의 위상 확보 없이는 지속 가능한 수출 확장이 불가능하다. 결국 수출의 본질은 규제 대응 능력과 산업적 협력의 속도전이며, 앞으로의 경쟁은 ‘가격의 전쟁’이 아니라 표준의 전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