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대 주력 산업 경쟁력이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이미 뒤처져 있다는 충격적인 설문결과가 나왔다. 지난 17일 한국경제인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100으로 가정할 때, 금년 기준으로 중국은 102.2로 우리보다 높았고, 5년 후인 2030년에는 한국과 격차가 더 벌어져 112.3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미국(112.9)과 맞먹는 수준이다. 현재 시점에서 중국의 경쟁력은 철강(112.7), 일반기계(108.5), 이차전지(108.4), 디스플레이(106.4), 자동차·부품(102.4) 등 5개 업종에서 한국을 앞질렀으며, 반도체(99.3), 전기전자(99.0), 선박(96.7), 석유화학·석유제품(96.5), 바이오헬스(89.2)는 한국이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2030년에는 반도체를 포함한 10개 업종 모두 중국이 앞설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첨단 인공지능 기술 또한 최근 몇 년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며 오랫동안 이 분야를 주도해 온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으며, 일부 영역은 대등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I 모델인 대규모언어모델(LLM)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거의 동등' 수준에 도달했고, AI 반도체 등 하드웨어 분야는 여전히 큰 격차가 있다는 평가다.
중국 AI 기술의 약진은 대규모언어모델(LLM)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알고리즘 효율성과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소프트웨어 혁신을 이룬 것이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 연구소(HAI)의 'AI Index 2025'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모델 간 성능 격차는 2023년 말 두 자릿수에서 2024년 말에는 0.3~3.7% 포인트 수준으로 급격히 줄었다. AI 성능 평가 플랫폼인 LMSYS의 '챗봇 아레나(Chatbot Arena)' 기준으로 2025년 2월 미국과 중국 최고 모델 간 격차는 불과 1.7%다.
이러한 평가는 중국이 하드웨어의 열세를 알고리즘과 모델 설계 혁신으로 성공적으로 우회했음을 보여준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제재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혼합(MoE) 등 효율적인 AI 모델 설계와 알고리즘 혁신을 통해 미국과 동등한 추론 성능을 입증했다. 또한, '문샷AI(Moonshot AI)'가 개발한 '문케이크' 플랫폼은 기존 방식보다 최대 5배 더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해 컴퓨팅 파워(GPU 등) 학습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AI 모델들은 단순한 성능 추격을 넘어 압도적인 비용 효율성과 오픈소스 생태계를 무기로 미국 시장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오픈소스 모델의 확산은 개발자 접근성 확대, 커뮤니티 기여 증가 등 '소프트웨어 혁신'을 가속화하거나 '미국 빅테크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는 파괴력을 갖는다. 중국 AI 모델들은 미국 경쟁사보다 50% 이상 저렴한 비용으로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성능 대비 저렴한 비용 때문에 알리바바의 '큐원(Qwen)' 등 중국 AI 모델을 채택하는 미국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에어비앤비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는 중국 모델이 "(미국 모델보다) 빠르고 저렴하다"며 보안 이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모델 선정 배경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중국은 '오픈소스 AI의 부흥'을 주도하며 '허깅페이스' 등 관련 생태계에서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그러나 AI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분야는 미국과 동맹국이 3nm 이하 공정에서 중국을 2세대 이상 앞서는 명백한 격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를 중국은 '스케일아웃(Scale-out)' 전략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 스케일 아웃이란 장비의 사양을 높이는 '스케일업(Scale-up)'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스템 성능이나 용량 확장을 위해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양의 칩을 대규모로 연결하여 전체 컴퓨팅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첨단 AI 칩 수출 제한 조치에, 중국은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칩을 대규모로 사용해 시스템 레벨을 극대화한 것이다. 단일 칩의 성능은 엔비디아의 최신 칩보다 떨어지지만, 화웨이, 캠브리콘과 같은 중국 기업들이 자체 개발한 AI 칩 수만~수십만개를 병렬로 연결하여 연산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렸다. 이러한 스케일 아웃 전략은 중국이 개별 기술의 성능 격차를 뛰어넘어 AI 분야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전략이 되었다.
이 전략은 막대한 전력 소모와 복잡한 엔지니어링을 필요로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대규모 AI 데이터 센터 운영에 필수적인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생에너지 등 전력 인프라 확충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자국산 AI 칩으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면 전력 비용의 50%까지 보조하고 있다.
미·중 AI 경쟁의 동력은 대규모 투자와 인재이며, 이는 미국의 민간 주도 모델과 중국의 정부 주도 모델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민간 투자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이지만, 국가 R&D 투자는 중국이 미국보다 2배 많다. 또한 미국의 민간 투자가 세계 최고 수준의 'SOTA(State-of-the-art)' 모델을 추구하는 '고위험 고수익' 베팅이라면, 중국의 국가 R&D는 AI 개발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부족한 민간 투자를 메우기 위해 지난 3월 1380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국가 벤처 캐피털 펀드를 발표하기도 했다.
AI 기술의 발전은 양질의 대규모 데이터에 크게 의존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터넷 및 모바일 사용자 수를 보유하고 있어, AI 모델 학습을 위한 방대한 데이터 풀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빅테크기업(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은 14억 인구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한다.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데이터 규제 환경 또한 기업들이 혁신적인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대규모 테스트를 진행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AI 연구 및 개발의 핵심은 결국 인재다. 인력에서는 전통적으로 중국은 '양', 미국은 '질'에서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이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우위는 확고하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AI 특허의 69.7%를 차지했다. 2024년 중국의 AI 연구 논문 편수는 전 세계 논문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중국은 수많은 이공계 졸업생을 배출하며 AI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거대한 인재 기반을 갖추고 있다. 최고 수준의 AI 연구소를 설립하고, 해외 우수 과학자들을 영입하는 '해외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빅테크기업들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과 연구 환경을 제공하며 인재를 끌어 모으고 있다.
중국은 초기에는 선진 기술을 빠르게 학습하고 모방하는 '카피캣 전략'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중국 특유의 시장 환경에 최적화된 독자적인 혁신을 창출했다. 미국의 기술 제재에 맞서 외부 의존도를 낮추고,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 소프트웨어까지 아우르는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중국의 놀라운 약진으로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중국이 AI 레이스에서 미국을 '10억분의 1초(nanoseconds)' 차이로 뒤쫓고 있다"며 중국의 승리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미·중 AI 패권 경쟁의 심화는 한국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자 새로운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단기적으로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증가는 한국의 주력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를 견인하는 강력한 호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리스크도 존재한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피해 반도체 자립에 성공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최대 시장이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 중심의 경쟁 구도 속에서, 쉽지 않지만 한국은 초거대 AI 경량화 모델, 특정 산업 특화 AI, AI 반도체 후공정 기술 등 특정 틈새 시장 선점, 독립적 AI 서비스 플랫폼 구축, 고성능-저비용 알고리즘 집중 등 차별화된 '매력적인 언더독(Attractive Underdog)' 전략으로 AI 패권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