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분리배출 체계는 세계에서도 가장 세분화되고 정교한 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시행 이후 30년, 한국은 단순한 쓰레기 처리 정책을 넘어 ‘자원순환형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체계를 차근차근 구축해 왔다. 지금의 시스템은 ▲분리배출 기준의 세부화 ▲아파트 중심 공동주택 체계 ▲재활용품 선별 인프라 확충 ▲시민 참여 기반의 운영이라는 네 가지 축이 결합된 형태다. 특히 전 국민의 일상 속 행동이 제도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글로벌 환경 정책 전문가들은 한국 모델을 ‘참여형 자원순환 시스템’의 대표 사례로 꼽는다.
한국의 분리배출 기본 체계는 크게 여섯 가지다.
▲종이류, ▲종이팩(우유팩·멸균팩), ▲플라스틱, ▲비닐류, ▲유리병류, ▲캔·고철류다. 여기에 폐건전지, 소형 가전, 의류, 스티로폼 등 별도 품목이 추가되며 총 10종 이상의 자원 배출 기준이 존재한다. 특히 주목받는 부분은 종이류와 종이팩, 플라스틱과 투명 PET을 구분하는 정책이다. 이는 재활용 품질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일반 종이류에 섞이면 재활용이 불가능한 우유팩·멸균팩을 분리하여 고급 재생 펄프로 활용하고, 투명 PET병만을 따로 모아 재활용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2020년 이후 시행된 투명 PET 분리배출 제도는 실제 시장에서 재생 PET 원료 품질을 크게 개선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분리배출 참여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다수의 국민이 분리배출을 당연한 생활 습관으로 받아들이며, 아파트 단지의 규칙적인 배출 시스템도 제도의 정착에 기여했다. 그러나 참여율이 곧 재활용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장에서는 “양은 많지만 질이 낮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다. 특히, 플라스틱과 비닐류는 오염도가 높아 재활용 불가능한 비율이 40% 이상에 달한다. 종이류에서는 택배 박스의 테이프, 코팅지, 영수증이 섞여 들어오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유리병 분류에서는 색상 혼합과 파손이 재활용 효율을 떨어뜨린다. 스프레이 캔이나 부탄가스의 미처리 배출은 안전사고 위험까지 초래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분리배출 기준이 세밀하지만, 시민이 그 세밀함을 모두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즉, 기준의 정교함과 시민 행동의 간극이 품질 저하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지자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 분리배출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중이다. 투명 PET 수거 시 보상 포인트를 제공하는 무인수거기가 전국 확산 중이며, 배출품의 재질을 자동 분석하는 AI 수거함, 용량을 자동 압축하는 스마트 의류함, IoT 기반 종량제 배출 관리 등 ICT 기술이 재활용 품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환경부는 2027년까지 주요 도시의 분리배출지에 AI 기반 선별 시스템을 도입하고, 가정과 수거·선별센터를 디지털로 연결하는 ‘전국 자원순환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오분리 문제를 줄이고, 재활용품의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연합의 포장재 규정(PPWR), 일본의 자원순환법처럼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분리배출 시스템은 모범 사례로 여러 국제 포럼에서 소개되고 있다. 특히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공동주택 분리배출 시스템, 배출-수거-선별-재활용의 명확한 흐름, 정교한 분류 기준은 해외 도시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보지 않는다. 앞으로는 ▲재활용 시장 가격 안정화, ▲재생 원료 품질 기준 마련, ▲기업 포장재 구조 개선(EPR 강화), ▲시민의 편의성 증대, ▲스마트 인프라 확대 등이 더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분리배출 체계는 전 국민이 매일 실천하는 가장 작은 환경 정책이지만, 국가 자원순환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다. 제도가 정교할수록 시민의 이해와 참여가 중요해지고, 시민이 올바르게 배출할수록 재활용 산업의 경쟁력은 높아진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분리배출 선진국이다. 이제는 양적 참여를 넘어 질적 재활용을 향한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기술, 정책, 시민의 행동 변화가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한국형 분리배출 모델은 글로벌 자원순환의 표준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