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과 서버 화재의 충격
추석을 앞두고 들려온 소식 하나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국가 차원에서 함께 운영·관리하던 전산서버에 화재가 발생해 주요 공공서비스가 먹통이 되었다. 평소라면 단순한 불편 정도로 지나 갔을 지 모르지만, 추석 대목에 우체국 통신망을 활용해 한과 수만 상자를 팔기로 한 중소업체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디지털 플랫폼이 생존의 통로였는데, 며칠의 통신장애가 지역 소상공인의 1년 매출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디지털 의존과 취약성
이번 사태는 우리가 얼마나 디지털 인프라에 의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넷과 서버는 전기·수도처럼 당연히 흐르는 자원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상 그 어떤 기반시설보다도 불안정한 요소를 안고 있다. 물리적 화재, 해킹과 같은 사이버 공격, 혹은 단순한 전원 차단까지 다양한 위험이 늘 잠복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김 없는 연결’을 당연하게 기대하며, 재난에 대한 대비는 부족했다.
집중화의 위험
특히 이번 사례에서 드러난 문제는 ‘집중화’에 있다.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효율성을 이유로 서버를 모으고 관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단일 거점이 무너지자 전국 단위로 서비스가 마비됐다. 이는 디지털 인프라의 효율성과 안정성 사이의 긴장 관계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과거 전력망도 한 곳에만 의존하다가 정전 사태를 겪은 후, 분산과 백업 체계를 강화해 왔다. 디지털 역시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분산화를 위한 기술혁신
무엇보다 분산화를 가능하게 할 기술혁신이 절실하다. 단순히 서버를 여러 곳에 두는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 복구 시스템, 에지 컴퓨팅을 통한 지역 단위 처리, 블록체인을 활용한 데이터 무결성 확보 등 신뢰성과 탄력성을 높이는 신기술이 필요하다. 디지털 사회는 더 이상 선택적 편의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의 생존 기반이므로, 이를 뒷받침할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사업화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이야 말로 디지털 인프라의 새로운 ‘보험’이다.
해법과 과제
해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분산화와 다중화다. 클라우드 기술은 이미 여러 지역에 서버를 두고 데이터를 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두었다. 문제는 비용과 관리의 문제일 뿐이다. 정부와 기업이 예산 절감 논리에만 매달린다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둘째, 공공적 관리와 민간 협력의 균형이다. 디지털은 더 이상 특정 기업의 서비스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기(公器)에 가깝다. 따라서 공공성 확보와 동시에 민간의 기술 혁신을 적극 활용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국가적 위기관리 체계 속에서 디지털 인프라는 필수 재난 대응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인식의 전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우리는 그동안 디지털을 ‘편리한 서비스’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것이 도로, 철도, 항만과 같은 생명줄 인프라임을 일깨워주었다. 디지털이 끊기면 단순히 채팅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금융 거래가 중단되고, 의료 서비스가 지체되며, 소상공인의 삶이 무너진다. 그 파장은 실물경제와 공동체 신뢰 전반으로 번진다.
추석 선물 한과를 팔지 못한 상인들의 좌절은 단순한 경제적 손실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디지털 인프라를 얼마나 허술하게 다뤄왔는지, 또 그 피해가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고다. 지금이야말로 디지털 사회의 기반을 다시 설계해야 할 때다. 편리함 뒤에 숨어 있던 취약성을 인정하고, 분산과 백업,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통해 진정한 ‘안전망’으로서의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소상공인을 지키고, 국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