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제임스 맥글린치 신부

제주 서부 한림읍의 중산간지대 산록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500㏊(약 150만 평) 규모의 광활한 성이시돌목장이 나타난다. 지금은 주로 경주마와 젖소를 기르고 있으나 개량종 돼지와 면양을 국내에 보급했으며 한때 국내 최대의 목장으로 꼽혔다. 목장을 가꾼 주인공은 아일랜드 출신의 사제 패트릭 제임스 맥글린치 신부다. 한국식 이름은 임피제(任皮濟). ‘푸른 눈의 돼지 신부’로 불렸다.

그는 1928년 6월 6일 아일랜드 북부 도니골주에서 태어났다. 워싱턴DC에 있는 미국가톨릭대 수의학과를 다니다가 미 군정기인 1948년 1월 미국과 아일랜드 간 외교 파견 견학원 신분으로 제주도를 처음 방문했다. 그해 2월 아일랜드로 귀국한 뒤 1951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로 서품받았다. 1953년 4월 한국에 도착해 이듬해 4월 제주도 한림본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4·3 사건의 비극과 6·25 전쟁의 참화를 잇따라 겪은 제주도민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한 상태였다. 맥그린치 신부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그때 제주도 사람들 너무 가난했어요. 매일 기도했습니다. 이 사람들 잘살게 해 달라고. (중략) 계속 부탁만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저는 아버지께 아직도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시작은 돼지 한 마리였다. 어느 날 육지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새끼를 밴 요크셔종 돼지 한 마리를 끌고 왔다. 그 돼지가 낳은 새끼 열 마리로 가축은행을 만들었다. 수의학을 전공한 맥글린치 신부는 돼지 사육에 관한 지식도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이렇게 키우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듣지 않았다. 미국 농업원조를 통해 받은 사료용 옥수수도 나눠줬으나 빚에 시달리던 농가들은 내다 팔기 일쑤였다.

하는 수 없이 1957년 청소년들을 모아 4H클럽을 결성한 뒤 함께 가축 사육법을 공부하고 축사를 짓고 황무지를 목초지로 가꿔나갔다. 1959년에는 직조 기술을 지닌 수녀를 초청, 양털로 실을 뽑고 천을 짜는 한림수직사(翰林手織社)를 만들어 여성들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목장이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은 1961년 11월. 전 세계 농부의 수호성인 이시도르(1070~1130)의 이름을 따 성이시돌목장이라고 이름지었다. 이시도르는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에서 하느님에게 순종하며 일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다. 독실한 신앙심에 감복한 천사들의 도움으로 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이시돌목장은 축산 현대화의 선구자였다. 1962년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를 만들어 개량종 돼지, 면양, 육우, 젖소 등을 들여오고 배합사료공장과 치즈 가공공장을 운영했다. 성이시돌목장은 국내 최고의 목장이 됐고 인근 주민들의 소득과 건강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당시에는 농가 주민이 은행 빚을 내기 어려워 계(契)를 통해 목돈을 마련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종종 계주가 잠적해 말썽이 나곤 했다. 신자 가운데 한 명도 계가 깨져 빚 때문에 자살하자 1962년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1970년에는 성이시돌복지병원을 개원해 저소득층 주민에게 무료 진료를 펼쳤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맥그린치 신부는 1973년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은 데 이어 2014년 자랑스러운 제주인으로 선정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2년과 2015년 각각 석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1975년에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과 아일랜드 행정인권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2018년 4월 23일 심근경색과 신부전증으로 선종했다. 6월 5일 대한민국 명예국민증이 추서됐다. 지금까지 명예국민증을 받은 외국인은 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와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마리안느·마가렛 수녀 등 4명이다.

성이시돌목장에는 맥그린치 신부가 아일랜드에서 건축 기술을 배워와 1961년 4H클럽 회원들과 함께 지은 테시폰 주택이 두 동 남아 있다. 테시폰은 이라크 바그다드 근교 지역에서 유래된 건축 양식으로 2021년 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성이시돌센터는 맥그린치 신부의 발자취와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신부의 묘역 주변은 ‘새미 은총의 동산’으로 꾸며졌고 맥그린치 신부가 양들을 돌보는 모습을 형샹화한 동상도 만날 수 있다. 금악성당과 함께 양로원, 피정센터, 어린이집, 수녀원, 카페 우유부단, 기념품점 등도 들어서 있다.

1978년 수의학을 공부하던 아일랜드 청년 마이클 리어던(한국명 이어돈)이 봉사활동을 하러 성이시돌목장을 찾아왔다. 맥그린치의 인품에 감화되고 제주 주민들의 매력에 빠진 그는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뒤 1986년 사제품을 받고 다시 제주로 파송됐다. 맥그린치의 뒤를 이어 지금까지 성이시돌목장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