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일터 풍경이다. 사무실 책상에서 서류로 하던 일을 인터넷에 접속해 소프트웨어로 처리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업무용 협업 소프트웨어다. 업무용 협업 소프트웨어는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구성원들이 대화나 회의를 하고 파일을 공유하며 공동으로 작업하도록 돕는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면 사용할 수 있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사용이 급격히 늘었다.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원격근무 등이 증가하면서 전 세계 업무용 협업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올해 596억7,000만 달러(약 82조3,000억 원)에서 2032년 1,326억4,000만 달러(약 183조 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표적 협업 소프트웨어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팀즈', 구글 '워크스페이스', 노션, 슬랙 등이다. 쟁쟁한 해외업체들이 장악한 이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국산 소프트웨어가 있다. 2014년 설립된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 토스랩이 만든 '잔디'다. 2015년 등장한 잔디는 무려 5,000개 기업이 사용하며 국내 대표적 협업 소프트웨어로 자리 잡았다.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김대현(42) 토스랩 대표를 만나 비결을 들어 봤다.

김대현 토스랩 대표

김 대표는 잔디를 "업무용 카카오톡"이라고 표현했다. 의사소통 도구인 메신저를 기반으로 한 협업 도구이기 때문이다. "동료 상사 등과 메신저로 대화하듯 편하게 업무를 볼 수 있어요. 일정 관리부터 보고서 작성, 다른 사람과 협업 및 상사 보고 등 대부분의 일을 잔디에서 할 수 있죠. 직원들 의견을 묻는 투표부터 입사기념 축하 등 상품을 선택해 선물하는 기능까지 있어요. 예전에는 여러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일들을 하나로 해결하죠."

그러나 전자우편 기능은 제공하지 않는다. 전자우편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빠른 내부 소통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전자우편으로 소통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빠른 협업을 위해 메신저 기능을 지원하죠. 또 많은 기업이 전자우편을 따로 이용하고 있어서 굳이 넣을 필요가 없어요."

잔디가 유명한 해외 협업 소프트웨어와 경쟁을 뚫고 자리 잡은 비결은 강력한 현지화다. "일부 해외 협업 소프트웨어는 한글 지원이 늦었고 매끄럽지 않아요. 이용자 환경(UI)도 낯설죠. 잔디는 익숙한 카카오톡 같은 이용자 환경(UI)과 아시아권에서 중요한 조직도를 제공해요. 그런데 해외업체들은 정서가 달라 조직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또 일부 해외업체들은 이용료를 달러로 결제해 환율에 민감한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럽죠."

여기에 고객 지원도 차이난다. 토스랩은 1 대 1 상담과 챗봇을 활용해 기업들의 궁금증에 빠르게 대응한다. 반면 일부 해외업체들은 그렇지 못해 불만을 사고 있다.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등 다양한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잔디는 사용 인원에 따라 월 이용료를 받는 구독형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로 제공된다. 일부에서는 자료를 인터넷에 저장하는 SaaS의 클라우드 방식 때문에 보안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려고 3중 보안 시스템을 택했다. "기업 내부의 전산시스템에 자료를 저장하는 방식과 클라우드 방식은 집 금고와 은행에 비유할 수 있어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클라우드 방식의 보안이 많이 좋아졌죠. 잔디는 특정 기간 파일을 많이 내려받는 등 이상 행동이 발견되면 보안 점검을 할 수 있어요. 또 퇴사자가 그만둘 때 업무 내용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차단 기능도 있죠."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잔디를 이용하는 기업은 약 5,000개다. 우리말뿐 아니라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를 지원해 해외에서도 사용한다. "롯데백화점, 한샘, 넥센타이어 등 대기업부터 5인 규모의 작은 스타트업까지 사용해요. 국내 기업이 해외업체와 일할 수 있고 해외 법인을 둘 수 있어 다국어를 지원해요."

해외 정서까지 헤아리면서 외국기업들도 잔디를 사용한다. "전체 이용자의 12%가 대만과 일본 기업이죠. 대만과 일본은 기업 문화가 우리와 비슷해요. 메신저에서 감정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많이 사용하고 '라인' 메신저의 캐릭터를 좋아해요. 이를 감안해 라인에 캐릭터를 제공하는 업체와 제휴해 같은 이모티콘을 사용해요.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쳐요. 또 현지 직원이 응대하는 고객 센터를 운영하고 엔화와 타이완 달러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어요."

해외까지 진출하며 직원 38명의 이 업체가 지난해 거둔 매출은 50억 원이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월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올해는 매출을 15% 이상 끌어올려 연간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죠."

투자는 누적으로 285억 원을 받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KDB산업은행, SV인베스트먼트,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퀄컴벤처스, 한글과컴퓨터, 머스트자산운용 등에서 투자했다.

업무용 협업 소프트웨어 '잔디'를 개발해 대만,일본,말레이시아등에 수출한 김대현 토스랩 대표

김 대표는 요즘 추세에 맞춰 지난 3월부터 잔디에 인공지능(AI)을 접목했다. 잔디에 물을 준다는 의미로 '스프링클러'로 명명한 AI는 기업 내부와 외부 자료를 이용해 업무를 돕는다. "질문에 스마트 검색 기능을 통해 3초 이내 답변을 해요. 상사에게 대화 메시지를 보낼 때 적합한 어투를 AI가 고쳐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죠."

이를 위해 앤트로픽에서 만든 거대언어모델(LLM) '클로드'를 활용해 AI를 개발했다. 특히 기업 내부에서 사용하는 문서 양식과 내규 등을 AI가 참조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환각오류를 줄였다.

관건은 요즘 속속 등장하는 AI 에이전트와의 경쟁이다. AI 에이전트는 특정 기능에 집중한 AI 비서 같은 소프트웨어다. AI 에이전트 때문에 협업 소프트웨어 사용이 줄어들 수 있는 우려가 있다. "AI 에이전트는 경쟁이 아닌 진화의 도구죠. AI 에이전트는 인터넷 자료를 기반으로 하지만 잔디는 기업 내부 자료까지 활용해요. 따라서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잔디의 기능을 개선할 수 있어서 접목 여부를 고민하고 있어요."

김 대표는 서울시립대에서 도시의 교통시스템 등을 다루는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도시공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서울시와 LG가 합작해 만든 티머니 연구소에서 2년간 교통카드를 개발했다. 이후 전자상거래 업체 티몬으로 이직해 4년간 일하며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었다. 창업을 결심한 것은 직장 생활에서 느낀 업무 비효율성 때문이다. "세상은 디지털 때문에 편해지는데 업무 소통이 아직도 비효율적이라고 느꼈어요."

앞으로 김 대표는 해외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대만에 지사를 두고 있는데 주변 국가들로 넓힐 생각이에요. 미국은 시장이 달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요. 반면 아시아는 우리와 비슷해 효율적인 진출이 가능해요."

그의 꿈은 아시아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 1위 기업이 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컴퓨터 운용체제(OS)의 대표 기업으로 MS를 꼽죠.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아시아 1등 업체로 누구나 토스랩을 떠올리게 만들고 싶어요."

출처 한국일보